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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현안

사회 각계 인사 498명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 적격 성명 발표

사회 각계 인사 498명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적격 성명 발표

 

 

 

<사진출처 연합뉴스>

 

김상조를 아끼는 사회 각계인사 498명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
 
김상조 후보자의 도덕적이고 청렴한 삶을 증언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희들은 지난 몇십년 동안 대학원생 연구실에서, 강단에서, 연구 소모임에서, 학회에서, 정책토론회장에서, 주주총회장에서, 그리고 법정과 거리에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의 삶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아 왔습니다. 저희들은 비록 일부 경제 이론이나 정책 논점에 대해 김 후보자와 견해를 달리 하여 지면이나 토론회장에서 치열하게 토론한 적도 많았으나, 그의 소탈한 인품과 청렴한 일상 생활을 높이 평가하여 강산이 변하는 세월 동안 교류를 지속해 왔습니다.
 
그런 저희들로서는 이번 김상조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 과정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이었습니다. 비리와 의혹이 있다며 매일매일 터져 나오는 언론의 헤드라인에 놀란 저희들은 혹시 저희들도 모르는 무슨 중대한 문제가 있나 해서 지난 6월 2일에 있었던 청문회를 유심히 지켜보았습니다. 이잡듯 샅샅이 뒤진 끝에 나온 김 후보자의 사생활은 우리가 평소 익히 알고 있었던 언행 그대로였습니다. 학자로서, 또 가장으로서,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조그마한 허물이 없을 수는 없겠습니다만 그 또한 김 후보자의 진솔한 사과를 보고도 용서 못할 정도의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청문회 과정에서 그동안 제기된 여러 의혹에 대해 김 후보자가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하고 진솔한 해명과 사과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채, 김 후보자를 탐욕스런 인간이자 파렴치한 학자로 계속 매도하는 일부 언론과 정치권의 모습에 실망과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강남 은마 아파트의 집주인이 청문회장에서 실거주를 증언하고, 김 후보자가 관리비 이체 내역을 공개했음에도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 의혹을 멈추지 않는 일부 언론과 정치권에 연민과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저희들이 각자의 이름을 걸고 국민 여러분께 이 말씀을 드리게 된 이유입니다.
 
저희들은 김 후보자의 평소 지론과 행동의 모든 면에 대해 견해를 같이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일부 언론과 정치권이 자신의 정략적 이해 때문에 청렴하고 양심적으로 살아 온 학자의 삶을 파렴치한(破廉恥漢)의 치졸한 일탈인 양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에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습니다.
 
공직 후보자에 대해 합리적인 의혹을 제기하고 그에 대한 진솔한 해명을 요구하는 것은 민주 사회의 투명성을 위해 지극히 정당한 절차입니다. 그러나 흠집내기용 억지 의혹을 제기하거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해명을 듣고도 이를 억지로 외면하는 것은 민주 사회의 정도(正道)가 아닙니다. 또한 적극적인 지지 표명에 따르는 작은 위험을 두려워한 나머지, 김 후보자에 대한 부당한 처사를 공직자에 대한 비판이라는 미명하에 외면하는 태도 역시 위선적일 뿐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희들은 김 후보자를 오랫동안 옆에서 지켜보아 온 사람으로서 이 자리를 빌어 김 후보자가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엄격한 삶을 일관되게 살아 왔음을 증언합니다. 우리는 정치권과 언론이 김 후보자의 인격과 도덕성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거두고, 정략과 이해관계에서 벗어날 것을 촉구합니다. 공정거래위원장에 관한 인사 검증은“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적임자를 뽑아야 한다는 순수한 충정(衷情)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새로운 민주 사회의 건설을 열망하는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는 길입니다. 김상조 후보자 역시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옷깃을 여미고 공인의 자세를 가다듬어 초심을 잃지 말고 공정한 경제 질서 구축에 매진해 줄 것을 당부합니다.
 
2017년 6월 6일 현충일에
 
김상조를 아끼는 사회 각계인사 498명 일동

 

이 서명에는 김상조 후보자의 은사 3인을 포함한 학계 380(한성대 119명 포함), 변호사 55, 회계사 19, 기타 사회인사 44명 등 도합 498명이 서명에 참여했다. 서명 작업은 6 4()오후 5시에 시작하여 6 5() 밤까지 진행되었다.

 

<보도자료를 참조하였음>